FIELD NOTE · 2011년 3월

라오반장에서
처음 차를 만들어본 날

그날 나는 제다를 배우러 간 학생이라기보다 차가 궁금해 산을 따라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찻잎을 직접 따고, 솥 앞에 서보고, 비비고, 해가 지기 전에 널어보면서 비로소 한 잔 뒤에 얼마나 많은 손이 있는지 조금 알게 됐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1. 01

    2011년 3월 라오반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과 당시 기억을 함께 봅니다.

  2. 02

    사진에 보이는 사실과 2019년에 다시 적은 개인 기억을 구분합니다.

  3. 03

    품종·수령·정확한 공정 수치·품질은 사진과 기억만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MEMORY · 그날의 기억

처음부터 제다 용어를 알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윈난에서 지내며 알게 된 차인들과 산지를 다니던 때였습니다. 2011년 이른 봄,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농가를 따라 라오반장에 갔습니다. 지금처럼 자료를 체계적으로 확인하며 간 여행도 아니었고, 보이차 제조를 제대로 설명할 만큼 지식이 있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찻잎을 따보고 만들어볼 수 있다는 말에는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차는 이미 자주 마시고 있었지만, 내가 마시는 잎이 사람의 손을 거쳐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 몸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FIELD NOTE · 채엽과 펼침

두어 시간 잎을 따고 나니 목과 어깨가 먼저 알았습니다

자루 안에 가득 담긴 갓 딴 연둣빛 찻잎
① 갓 딴 찻잎. 2011년 3월, 윈난 라오반장
대나무 깔개 위에 얇게 펼쳐 시들리는 생잎
② 덖기 전에 펼쳐 시들리는 잎. 2011년 3월, 윈난 라오반장

사진에는 자루에 담긴 갓 딴 잎과 대나무 깔개 위에 얇게 펼쳐둔 잎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손이 닿는 가지에서 새순을 따며 두어 시간 정도 작업했다고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잎을 따는 일이 단순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목과 어깨가 뻐근해졌습니다. 매일 이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잠깐이나마 몸으로 느꼈던 장면입니다.

촬영 메모에는 두 번째 사진을 덖기 전 잎을 펼쳐두는 과정으로 남겼습니다. 정확한 시간·온도·당시 잎의 품종과 채엽 기준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MEMORY + FIELD NOTE · 솥 앞에서

내가 덖은 잎은 금세 뭉치고 군데군데 검어졌습니다

김이 오르는 큰 솥에서 장갑 낀 손으로 생잎을 뒤집는 모습
③ 큰 솥에서 잎을 덖는 모습. 2011년 3월, 윈난 라오반장
대나무 채반 위에 덖고 비빈 찻잎을 손으로 펼치는 모습
④ 덖고 비빈 찻잎을 채반에 펼치는 손. 2011년 3월, 윈난 라오반장

점심 뒤 펼쳐두었던 잎을 농가 한쪽의 큰 솥에서 직접 다뤄봤습니다. 손으로 잎을 털고 뒤집으며 어떻게든 고르게 열을 받게 해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제 손을 거친 잎은 뭉친 부분도 있었고 검게 변한 곳도 눈에 띄었습니다.

옆에서 보던 현지 사람이 웃으며 나머지를 맡았습니다. 기억에 남은 것은 속도보다도 일정함이었습니다. 잎을 솥의 한쪽에 오래 두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손이 빠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공부하면서 내가 해봤던 일이 살청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고, 그 뒤 비비는 과정과 햇볕에 말리는 과정이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다는 것을 다시 이해했습니다.

FIELD NOTE · 비비고 말리기

해가 넘어가기 전에 잎을 널었습니다

대나무 깔개 위에 흩어 널어 말리는 덖고 비빈 찻잎
⑤ 덖고 비빈 잎을 해 질 무렵 널어 말리기. 2011년 3월, 윈난 라오반장

솥에서 나온 잎을 조금 식힌 뒤 대나무 채반 위에서 비비고 털어보았습니다. 오래 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는 이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돌아가며 조금씩 손을 보탰고, 마지막에는 잎을 펼쳐 햇볕 아래 널었습니다.

현재 사진에서는 덖는 장면, 채반 위에서 잎을 다루는 장면, 펼쳐 말리는 장면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 공정 전체를 연속 촬영한 것은 아니므로 사진 다섯 장만으로 제조 순서의 모든 세부를 복원하지 않습니다.

MEMORY · 사진 밖에 남은 것

그날 밤에는 차보다 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했습니다

사진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과제에 다시 적어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농가 마당 한쪽에 텐트를 치고 현지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차 이야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술잔도 오갔고 사는 이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이런 시간이 꽤 많이 들어 있습니다. 차는 늘 잎과 물만으로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누구와 있었는지, 어디까지 찾아갔는지,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함께 남았습니다.

MEMORY · 내려와서 마신 차

잘 만든 차였는지는 몰라도, 쉽게 잊히는 차는 아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뒤 그날 만든 모차를 우려 마셨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풋내와 떫은맛이 강했고, 목 주변에 남는 단맛이 인상적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2011년의 차를 2019년에 떠올려 기록한 개인적인 맛의 기억입니다.

지금 그 차를 다시 검증하거나 품질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오래 남았습니다. 차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처음 몸으로 느꼈고, 그 뒤로 차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

사진과 당시 기록으로 장소와 시기, 직접 채엽·솥 작업·비비기·펼쳐 말리기를 경험했다는 개인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반면 잎의 품종·나무 수령·채엽 등급, 정확한 위조 시간·솥 온도·유념 강도, 완성 차의 품질과 원료 인증은 이 기록만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라오반장’이라는 장소 기록 역시 판매 상품의 원료 산지·진품·품질 인증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